주가는 어떻게 결정될까. 정답은 없다. 셀 수 없는 각종변수․환경의 직간접적인 상호작용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중 기여도․가중치도 일상다반사로 급변한다. 그래서 주가는 술주정뱅이처럼 오락가락한다. 오를지 내릴지 알 수 없다(랜덤워크이론).
유능한 펀드매니저보단 침팬지의 무의미한 선택이 더 낳은 투자수익을 냈다는 연구도 있다. 최근엔 정량지표대신 정성변수도 관심사다. 계산기로 두드릴 수 없는 정성가치의 주목이다. ‘주가=돈+심리’의 등식(앙드레 코스툴라니)을 봐도 그렇다.
정성변수의 대표주자는 최고경영자(CEO)다. ‘CEO주가’다. CEO가 누구며, 어떤 발언․행동을 했느냐에 따라 주가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EO 마인드와 자질, 노하우, 운영철학, 네트워크, 성격 등은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해서다.
일본기업의 CEO는 경영자보다 철학자에 가까운 것 같다. ‘경영의 신(神)’으로 추앙받는 유명인들일수록 특히 그렇다. 때문에 서점에 가보면 이들 경영자의 경영철학을 다룬 책들이 수두룩하다. 가히 스테디셀러다.
금융위기 이후 자본독주의 불협화음을 고쳐낼 유력대안으로 이들 전통적인 경영그루들이 부각되기도 했다. “돈은 떠나도 사람은 남는다”고 한 마츠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를 비롯해 인간존중의 혼다이즘을 만들어낸 혼다 쇼이치로(本田章一郞), 금권적인 자본주의 대신 자애적인 자본주의(慈本)주의를 강조한 이나모리 카즈오(稻盛和夫)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공통된 지향점은 ‘인간존중의 경영학’이다.
일본은 CEO의 천국이다. 어림잡아 30년 넘게 고도성장을 달성했으니 괄목할만한 경영성과를 낸 최고경영자가 많다. 특이한 건 가내수공업을 다국적기업으로 성장시킨 창업(오너)경영자의 존재감이다. 일본이 배출한 걸출한 CEO는 대부분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냈다. 패전이후 잿더미 속에서 악전고투의 두문불출을 반복하며 현재의 성공스토리를 엮어냈다.
이런 전통은 지금껏 이어진다. 일부 실패사례에도 불구, 대부분은 경영철학이 공유․전승된다. 즉 일본의 성공기업 상당수는 CEO주가를 확인할 수 있는 꽤 괜찮은 선행사례다. CEO를 시장에서 조달하는 미국적 경영과 달리 내부육성으로 발탁하는 일본적 경영이 갖는 정합성 중 하나다.
인간존중의 경영학이 지향하는 최종가치는 ‘직원만족(행복)’이다. 행복한 근무환경의 조성이다. 이를 만드는 일등공신이 CEO의 강력한 의지와 추진 에너지다. 유무형의 각종장치로 직원만족도를 높인 이후 실적성과가 개선됐다는 경험은 공통적이다. 그러니 CEO의 낮은 자세는 보편적이다.
성공여부를 물으면 늘 “스스로 즐겁게 일하도록 근무환경을 만들어준 게 전부”라고 되돌아온다. 거의 예외 없는 공통답변이다. 즉 이끄는 위치가 아닌 도와주는 역할의 자청이다. 강제․지시․명령이 아닌 협의․보조․조언하는 역할을 강조할수록 직원만족은 정비례한다는 경험칙 덕분이다. 요컨대 직원웃음에 회사자원을 총동원하는 구조다.
성공한 일본기업의 CEO들에겐 공통특징이 있다. ‘일할 맛’의 고집이다. 행복한 기업문화의 저변을 일찌감치 깔아줬다는 점에서 놀라운 선견지명이다. 핵심은 3가지다. 정신력, 기술력, 인간력이다. 세상에 없는 원천기술(기술력)을 둘러싼 불굴의 가치추구와 도전정신(정신력)을 제조현장의 직원(인간력)에게서 찾으려는 발상과 실천의지다.
특히 인간력이 먼저다. 생활급으로 근로복지를 지탱하고 경영위기 때조차 고용을 지킨 일본적 인간존중의 경영학은 이들 원조CEO들에게서 채택․지지를 받아온 덕분에 공고히 지켜질 수 있었다.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원조스타 3인방 CEO의 계보를 잇는 후배경영자의 성공스토리는 현재진행형이다.
샘플기업은 많다. ‘재밌고 즐겁게(Joy & Fun)’의 실천기업 호리바제작소를 보자. 이 회사는 직원을 재화(財貨)가 아닌 재산(財産)으로 본다. 그러니 개성이 먹힌다. 재미나고 즐겁게 일하면 혁신은 저절로 발휘된다는 입장이다. 벤처정신을 지녔는데도 대기업병에 걸리지 않고 전통을 지키는 배경이다.
또 장수기업 단골후보인 다이킨공업은 금전보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신뢰를 구축했는데, 그 근간이 바로 직원중시다. “직원모두의 꿈의 합계가 기업성장”이란 판단으로 개개인의 꿈을 키우는데 사활을 건다. 비슷한 이유로 이나식품은 『일본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픈 회사』에 소개되기까지 했다. 역시 직원만족을 실현해낸 기적의 회사로 자주 거론된다. 일감이 몰려도 잔업을 시키고 싶지 않아 주문을 거절할 정도다.
이런 점에서 일본적 인간존중의 경영학은 건재한 편이다. 1990년대부터 수많은 위협과 함정을 이겨내며 ‘일할 맛’을 지키고자 열심이다. 선배CEO들의 가르침을 좇아 무한한 인간애정을 발휘함으로써 통계적인 현대경영학의 빈틈을 메워주려 한다. 연말연시면 CEO를 대상으로 한 각종의 표창․시상이 잇따르는데, 이때도 그 주인공의 공통면면은 하나같이 ‘인간존중’으로 요약된다.
2000년대 이후 미국적 경영시스템을 대폭 수용한 한국에선 보기 드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고용=비용’의 경제적 합리성에 익숙해 구조조정이 일상적인 2013년 한국의 세모(歲暮)와는 이질적인 일본적 풍경이다. 물론 일본기업의 전체모습은 아니다. 아쉽게도 갈수록 찾기 힘들다. 그래서일까. 도약을 꿈꾸는 일본재계가 이들 원조스타 3인방에 재차 주목 중이다.
*프로필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일본 게이오(慶應)대 경제학부 방문교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연구교수
-한양대 국제(경제)학 박사
-한국경제TV ′머니로드쇼 재테크 파노라마′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