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한 지리산을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20대 때 일이다. 막연하게 ‘지리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 지고 엄마의 젖을 빠는 것 같은 풍족한 행복해 젖었다. 풍족한 행복도 풍류의 일종이다.
지리산 풍류를 찾아 가야지가야지 하면서 미루어 놓았던 지리산 종주산행을 친구 놈이 말과 동시 실행에 옮긴 것이 계기가 됐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지리산을 종주해야지’ 하더니 느닷없이 행동으로 옮긴 것이었다.
출발 3일전 종로 5가 등산 매점을 찾았다. 산에서 60ℓ짜리 배낭과 밥해 먹을 불화로 등을 샀다. 가게 주인의 친절한 안내와 교육 덕분으로 필요한 물품을 안성맞춤으로 샀다.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경험한다는 것은 늘 설렘을 동반한다. 설렘도 풍류인지 지리산 종주 산행 준비가 풍류처럼 다가왔다.
종주 하루 전날 구례구역(求禮口驛)에 도착했다. 역 이름이 특이한 것은 역이 순천시 관할행정구역에 위치해 있으나 역으로부터 70여 미터 떨어진 섬진강을 넘어서면 구례군이어서 구례구역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한다. 군부대 지휘관을 하는 오래된 친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애 저녁 노을이 섬진강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 둘은 삼십여 년 전 시간을 당겨 구례읍에 있는 어느 허름한 술집 밥상 위에 펼쳐 놓았다. 당겨져 온 시간은 친구 머리 위로 하얗게 내려앉았다. 그 놈은 무엇이 그리 불안한지 연신 내게 물었다. “물통은 준비했니?, 사탕은 무엇을 챙겼니? 지도는 있니? 침낭은? 밥은 해 먹어 보았니? 손 전화 충전기는?”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서 꼭 숙제검사는 것 같았다.
여항(閭巷)의 식당 여주인은 연신 댓잎 소주를 내 놓으며 우리 둘의 말에 귀 기울였다. 좌석을 함께 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몇 순배의 술이 돌았다. 산행 첫 날 걸음걸이에 지장 받지 않을 만큼 취했다.
북 소리가 들려왔다. 명창 송만갑의 천구성 목소리가 지리산 등걸이 맥을 타고 귀전을 때렸다. 송우룡, 유성준, 박봉술, 강도근 등 국가급 명창들이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흥에 달아 오른 여주인이 명창들의 소리에 맞춰 살풀이 춤사위를 술잔에 따랐다.
어지러운 술자리를 뒤로 하고 친구가 마련해 준 숙소에 들어와 자리를 폈다. 잠이 오지 않았다.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우웅우웅 지리산 골짜기 바람이 창문을 흔들었다.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복잡해졌다. 떠오른 망상을 죽이고, 가슴 뛰게 하는 욕심을 억누르며 잠을 청했지만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지리산 산동네에서 맞이한 지리산의 첫날밤이 그렇게 하얗게 새가고 있었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