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부 최영수 차장 |
B사는 ‘공시내용에서 자사의 이름을 빼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공시규정상 수주계약시 발주사의 회사명을 공개해야 한다.
공시를 수정할 수도 삭제할 수도 없는 상황에 몰린 A사는 급기야 각 언론사에 공시기사를 내려달라고 읍소해야했다. 자랑할 일을 숨겨야하는 처지가 돼버린 것.
해당 대기업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자사의 사업계획이 자칫 경쟁사에 유출될 것을 우려"해서 그랬다고 해명했다.
어떤 사업을 입찰해서 발주하는 단계라면 사실 관련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력업체를 이처럼 쥐 잡듯 잡는 것은 아직도 갑(甲)의 지위를 등에 업은 횡포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다수의 투자자들에 제공되는 공시내용까지 수정하라는 것은 도를 넘은 것이다.
대기업의 횡포는 협력업체의 홍보와 IR 등 경영활동까지 일일이 통제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언론에 기사화된 내용을 점검해서 자사와 관련된 내용이 있을 경우 ‘난리’가 난다.
협력업체 임원을 불러 해명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반성문’ 성격의 경위서를 쓰게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 매출 비중이 높은 협력업체들은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중소기업 탐방을 가려다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리포트를 내지 않는 조건으로 탐방을 수락하겠다는 것이다. 납품하는 대기업이 이익률을 체크하는 수준을 넘어 투자자에게 기업정보를 제공하는 것까지 간섭하니 몸을 사릴 수 밖에 없다는 속사정이다.
실제로 이 같은 이유로 대기업의 눈 밖에 나서 수주 물량이 아예 끊기거나 반토막난 기업들이 적지 않다.
상장기업의 정보가 제때에 투명하게 공개되지 못하면 결국 피해는 투자자에게 돌아오게 된다. 자본시장법이나 공시관련 규정으로 협력업체의 IR활동을 부당하게 통제하는 행위에 대한 제재할 수 있게 해야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이나 한국거래소는 현실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를 내세웠다.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중소기업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책은 후퇴해선 안된다.
[뉴스핌 Newspim] 최영수 기자 (drea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