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사구시 한국경제(이건범 기획, 원승연 엮음, 생각의힘, 292페이지, 1만7000원)
열 명의 경제학 ‘박사’들이 각자의 연구분야를 논문으로 썼다. 다른 한 명의 경제학 박사가 이를 책으로 엮었고, 다른 한 명의 대중 작가가 일반 독자들과의 눈높이를 맞추었다. 모두 열두 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열 한 명의 박사들은 모두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동문수학했다.
이들은 80년대 이른바 민주화 운동 시기에 대학을 다녔고, 일부는 선두에서 격렬하게 운동을 했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길을 걸었고, 세월이 한 참 흐른 후 대학과 연구소에 자리를 잡고서는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름도 없는 월례토론회(포럼)를 여는 데 의기투합했다. 초점은 ‘보수/진보, 좌파/우파로 대쪽같이 갈렸던 1980년대의 눈으로 지금의 한국사회를 보지말자. 그 사이 한국은 모든 것이 변했다. 너무나 복잡해졌다.
여전히 경직된 한쪽의 시각으로만 문제와 해결책을 찾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처럼 실제적이지 않다. 우리가 서있는 현재의 땅을 확실하게 딛고서 하늘의 별을 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나 이 책이 나왔다.
여의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재야 경세학자, <2013년 이후>의 저자 김대호 사회디자인 연구소장은 좌우 경계 없는 광폭 행보, 줏대 있는 날카로움, 과감한(?) 비판에 몸을 사리지 않는 만큼 우군과 적군이 많기도 하고, 애매모호하기도 하다.
그가 이 책에 대해 이미 호평과 불평을 했다. 이건 대단한 일이다. 김대호 소장이 특별히 수작이라고 평가한 논문들은 읽어보니 과연 배울 게 참 많고 신선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박복영), 중국의 부상(지만수), 원전과 에너지(조영탁) 분야 논문들이다.
여기에 북한과 사는 법(김석진), 소득불평등(강신욱), 좋은 일자리(김혜원), 청년실업(홍장표), 사교육(남기곤), 부동산(이상영), 사회간접투자(류덕현) 등 현재 우리 사회가 첨예하게 논쟁, 대립 중인 10개의 주요 민생을 주제로 삼았다.
특히 ‘중국의 부상과 한국의 미래’는 중국과 미래를 쳐다보는 한국 기업들이 꼭 참고했으면 좋겠다. 성장하는 중국 내수시장의 공급률을 높이는 한편 중국의 산업고도화에 차별화 전략으로 적극 참여하자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서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의 독립과 강한 제조업, 건전한 재정이 답이다. 북한이라는 ‘이웃 나라’는 정답이 없는 골치 아픈 상대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평화유지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원전문제, 원전의 증설이 전력수요를 가속화해 다시 원전 증설을 부른다. 원전의 낮은 가격은 정부의 지원이지 실제로 싼 것이 아니다. 원전폐기물은 만년을 간다. 만년이면 신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다. 이것은 미래세대를 위한 가치의 문제이지 가격 문제가 아니다.
전기요금의 현실화로 열, 난방 등 모든 에너지를 전기로 해결하려는 불합리를 없애야 한다. 같은 양의 에너지 사용시 전기는 두 배의 연료가 들어간다. 그러므로 발전량이 경직적인 원전과 변화무쌍한 신재생 에너지 사이를 유연한 천연가스 발전소로 채워 전기도 살고, 환경도 살리자는 전략은 이제야 제대로 원전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해준다.
소득불평등, 좋은 일자리, 청년실업, 사교육 문제는 서로 복잡하게 맞물리고 얽혀있다. 한국 만의 특수성도 함께 있어 일도양단, 쾌도난마로 해결하기 어렵다. ‘좋은 일자리, 국민의식변화’로부터 선순환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들인데 워낙 복잡다단해 논문 한 편으로 소화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중립적 시각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해법을 찾아보려는 노력만큼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친 학자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보건산업진흥원의 엊그제 발표에 따르면 미래의 노인들과 현재의 노인들,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가장 믿는 노후 대책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부동산 시장과 정책이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누가 그 집을 사줄 것인가’가 문제다. 집만 있는 빈곤함이 심히 우려된다.
만약 지금 은퇴했는데 도심에 딸랑 집 한 채라면 필자로서는 일단 빨리 팔아 더 싼 곳으로 이주하고 볼 것을 권하고 싶지만 이 또한 미래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될지 자신은 없다. 지금 사는 도시를 떠나지 않고서 집과 노후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인사이트북스에서 펴낸 <마흔에 살고 싶은 마당 있는 집>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도 같다.
이름도 없는 포럼이라는데 ‘실한경제포럼’이 어떤지 제안해본다. 좌우 진영의 가두리 양식장에 갇혀 왜곡되고 얽히는 경제정책의 올바른 방향설정을 위해 대통령이 이 포럼을 가까이에 두고 의견을 자주 경청했으면 좋겠다. 차제에 김대호 소장도 이 포럼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실사구시 한국경제’를 위해 모두가 격의 없이 머리를 맞대보는 것이다.
최보기 북컬럼니스트(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