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 이야기(이화승 지음, 행성:B잎새 펴냄, 384페이지, 1만8000원)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는 속담은 속담일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인격이고 돈이 권력이다. 조폭의 세계든 독재 국가든 권력 뒤에는 조직을 움직이는 돈이 관건이다.
이들의 비밀금고를 관리하는 사람은 충성도, 신뢰도 1순위다. 사람이 나빠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돈이 거짓말을 시키는 것도 많은 경우 사실이다. 그러니까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최영 장군의 가르침을 어린 아이들에게 전할 때는 그 뜻을 깊이 헤아려 잘 전달해야 한다.
<상인 이야기>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통일제국 진시황의 배경이 되었던 상인이자 재력가로 '여씨춘추'의 저자였던 여불위의 벤처투자로부터 시작하려고 생각했다. 멀리 내다보는 투자로 천하를 얻는 이익을 올린 상인 여불위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책에 나온다.
부키 출판사가 2011년에 펴냈던 <지난 10년 놓쳐서는 안 될 아까운 책>은 각 분야 전문가 46인이 한 권씩의 명저를 추천하는 아주 좋은 책이다.
이 책에 추천된 '놓치기 아까운 책' 중 한 권이 중국 한나라 환관이 지은 <염철론, 김원중 옮김>이다. 소금과 철을 국가가 독점 판매하는 제도를 놓고 상홍양과 전국에서 모인 유생 60 여 명이 벌인 토론을 정리한 책으로 '당시의 사상과 뛰어난 토론문화 등을 엿볼 수 있는 명저'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그 '염철론'에 대한 내용도 이 책에 나온다.
명나라 대에 중국의 북방상권을 장악했던 '산서 상인 왕씨와 장씨' 두 가문으로부터 타고 내린 '신뢰와 인의, 의로운 이익만 추구한다'는 장사의 철학은 그 뿌리가 삼국지의 영웅이자 산서의 영웅 관우의 통치철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도 이 책에 나온다.
RHK 출판사에서 올해 초 펴냈던 <백은비사, 류방승 옮김>에서는 영국과 중국 간의 아편전쟁은 유럽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올리고 있던 당시 중국 상인들의 안방에 쌓여있는 은(銀)을 끄집어 내기 위한 화폐 전쟁의 속내가 숨어있었다고 밝힌다. 그런데 그 내용도 이 책에 나온다.
메디치 출판사가 펴낸 <여류 삼국지, 양선희 편작>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비에게는 미축이라는 돈줄이, 조조에게는 위홍이라는 돈줄이 있었다. 수만, 수십만의 군사를 기르고 유지하는데 어떻게 돈 없이 가능했겠는가.
때문에 <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고비고비 중요한 중국 정치사와 인물들이 함께한다.
그러니까 고우영이 만화로 펴낸 중국 역사서 <십팔사략>을 상인들의 세계와 철학을 중심으로 읽는다고 생각하면 적당하겠다. 십팔사략은 태고부터 송나라 말기까지의 전반적인 역사지만 <상인 이야기>는 태고부터 근대 중국까지 상업과 상업인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
사족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유대인에는 못 미치지만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화교들이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기를 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추론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하여튼 우선은 재미있다.
최보기 북컬럼니스트(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