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어 이런 질문 쑥스럽지만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 잘 살고 있는 거 맞아!?"
아마도 지금까지 방송일로 매일 시간에 쫒기며 살았다면 나에게 이런 질문도 못할뻔 했건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나에게 진지하게 물을 기회를 얻었다.
나.. 잘 살고 있는 거 맞지!?
시사프로그램을 관둔 이후로 나는 얼마간 행복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 놀맨 놀맨 옆집 할머니 들깨모종 심을 때도 참견하고, 불과 얼마 전에 심은 것 같은데 벌써 고추가 주렁주렁 달려 무거워진 고추대도 세워 묶어주고 너무 많이 달려 가지가 찢어질 것 같은 노란 방울토마토도 지지대에 똑바로 세워 지지해 주고, 초보농부가 심었어도 주렁주렁 달린 열매들이 신기해 입이 귀에 걸릴 만큼 행복해 하며 가을하늘만큼 높은 파란하늘도 올려다보고, 평소와는 다르게 8대2가르마 하이칼라로 옷도 쫘악 빼입고 목신리 버스정류장에서 무심하게 버스를 기다리는 옆집 할아버지도 면에 나가시나.. 생각으로 참견까지 해보고, 스콜처럼 장대비가 갑자기 내리는 날이 많아졌는데 그런 날 이면 활짝 열어놓았던 문을 얼른 닫고 유리창 밖에 키 큰 자작 나뭇잎이 빗물사이로 떨고 있는 모습, 만개한 백합 꽃 속에서 내 엄지손톱보다 더 작은 청개구리 한 마리가 비를 피하는 모습까지.. 느리게 느리게 관찰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백수가 과로사로 한방에 훅 간다더니 이게이게 과로사라 표현하는게 몸이 피곤한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고 생각이 피곤해 ‘다이’ 하는 걸 ‘백수과로사’ 라고 말하는 건가보다.
이상하다.
세상이 조용하다.
어라!
내가 없는데도 세상이 이토록 잘 돌아가네.. 싶어 섭섭한 마음이 약간씩 밀려오더니 급기야 잘 아는 피디와 통화를 하다가 언뜻 약간 무심한 그의 목소리가 느껴진다는 생각이 오른쪽 뇌리를 스치면서 ‘어허! 서운할세.. 목소리 반가움의 강도가 예전 같지않아~~’ 요런식의 감정이 일순간 쓰나미 처럼 확 밀려온다.
그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나만 혼자 얼굴이 벌개지고 마음속으로 확 ‘삐짐’의 못을 쳐버렸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내가 30년동안 그곳으로부터 한 발자욱도 멀어지지 못하고 그 곳만이 온 우주의 전부인양 지내왔는데 지금 그 곳에 내가 없는데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이렇게 잘만 흘러간다. 흘러 가는 게 뭐이냐 잘만 돌아간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이거 이미 세상이 열 번은 무너져 내리고 난리 부르스를 춰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참 섭섭하게도 무심한 세상은 무너지지도 않고 기름 친 재봉틀 돌아가듯 잘도 돌아가고 있으니 이게 웬일인가?
이쯤되면 나.. 잘 살아온거 맞아? 또는 잘 살고 있는거 맞아!?
자신에게 반문해 보게 된다는 사실.
나는 일생에 처음으로 백수가 됬을 때 정말이지 늘어지게 편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처음 며칠은 인간장판으로 살았지만 그 짓도 등이 배기면서 허리가 아파 못할 노릇이었다. 느즈막 하게 일어나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다가 주방으로 가서 일단 정신이 번쩍들 정도로 차가운 우물물 한잔을 컵에 가득 받아 마신다.
그래도 정신이 들지 않으면 다시 침대로 돌아와 이번엔 배를 깔고 누워본다.
잠이 오는 것도 아닌데 몸이 무겁고 나른하면서 살짝 피곤한 것 같기도 하고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더 무거워지고 이미 해는 중천에 떠서 도저히 빛이 가려지지 않으면 비행기를 탈 때 가끔 쓰는 수면용 안대로 눈을 가리고 다시 돌아 눕기를 반복한다.
나.. 30년동안 일만 하면서 살아 온거 맞네!
내가 일 중독이였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인생에 이렇게 나를 돌아볼 좋은 기회가 생겼는데도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이렇게 넉 다운이 된다는게 말이돼? 않돼?
“않돼!”
딱 결론내리고 느리게 가는 농촌생활시간표를 따라 나는 즐기면서 살기로 한다.
이래서 내 생각은 어려운 일도 피할 수 없으면 기꺼이 당해봐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게 아니고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사람은 각자 인생의 무대에서 주인공이다.
못난사람도 없고 잘난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사회가 가진 잣대로 인해 못난사람과 잘난사람이 구별되고 갈라진다.
내 주위 사람은 나에게 나만큼 친절하지 못하다.
나를 나만큼 잘 알지도 못한다. 고로 다른 사람을 내가 속속 잘 이해하고 안다는 건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이해한다 말로는 편들어 줄 수 있어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남들이 내 아픔을 왜 몰라줄까? 내가 이만큼 아픈데 당신들은 왜 내 상처를 보지 못하는거지? 속으로 부글부글 섭섭함의 버블을 키우고 있다.
언제 터트리려고??
세상이 그럴 진데 나는 왜 그 이치를.. 사람이 보통 가질 수 있는 그 마음, 인지상정 (人之常情)을 이제야 깨닫는가.
그러나 늦지 않았다.
죽을 때 까지 깨닫지 못하고 눈을 감느니 지금 눈 뜨고 팔팔 할 때 빨리 깨닫는 게 훨씬 이득이다.
나는 지금 나에게 답한다.
‘나.. 잘살고 있는거 맞아!’
지금 한창 바쁘게 힘든 당신도 ‘지금 잘 살고 있는 거 맞다!’ 응원하고 싶다.
사랑하는 당신.
당신이 행복한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프로필
-KBS 2기 공채 개그맨
-성균관대학교사회복지학 학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 박사과정
-희망서울 홍보대사
-CBS 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