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은행경영, 해외진출이 중요 키워드"
[뉴스핌=이강혁 기자] "내부 정비도 중요하겠지만 성장의 한계를 어떻게 능동적으로 돌파해 가느냐가 관건 아니겠습니까. 새로운 시장을 노크하는 것도 이런 측면이 강하죠."
지난 3일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만난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올해 경영여건은 최악의 해라고 봐야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올해 경영에서 해외진출 모색은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기적인 손익구조에 치중하면서 포화상태의 국내시장에서 지점 하나를 더 늘리기 위해 고민하기 보다는 글로벌 금융시장 공략에 좀 더 고삐를 죄어 보겠다는 이야기였다.
한 금융지주사의 고위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을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해외 진출 필요성이야 누구나 인정하는 것 아니겠냐"면서 "퍼스트 무버(선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외진출의 성공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래서 해외 인수합병(M&A) 시장의 좋은 매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의지를 나타냈다.
◆ 은행들 해외 공략 본격화..후발주자 농협도 속도전
이들 은행권 인사의 말을 종합해보면 올해 주요 시중은행들의 해외시장 공략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해외 소매금융 시장으로 시선을 돌리며 영역 확대에 나서고 있는 만큼 지주사 차원의 전략적 행보까지 더해져 시장 공략은 본격화될 수밖에 없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주요 시중은행들의 해외시장 공략은 걸음마 단계다. 일부 은행들이 1990년대 초반부터 해외시장 문을 두드리기는 했지만 속도가 붙은 것은 2~3년 사이다.
하지만 성과는 상당히 크다. 단적으로 우리은행은 이미 17개 국가에 진출했다. 지점 13개, 법인6개(예하 44개 채널), 사무소 3개 등 총 60개 채널을 운영 중이다. 신한은행도 14개 국가로 해외 네트워크를 늘렸다. KB국민은행 역시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 캄보디아 등 동남아 시장 전반까지 영역을 확대한 상태다. IBK기업은행도 10여개 국가에 사무소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내부정비에 시간을 빼앗겼지만 후발주자로 해외시장 공략을 시작한 NH농협은행도 뉴욕지점 개설 및 베트남, 중국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뉴욕지점은 지난해 6월 국내 신고수리절차를 완료하고 현지인가, 전산구축, 인력채용 등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내 개점이 예상된다. 베트남은 사무소 개설 현지인가가 이뤄졌고, 중국(북경)은 사무소 개설을 준비 중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업 특성상 해당 국가와 신뢰관계를 쌓기까지 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해야 하는 만큼 국내 은행들의 해외시장 선점 경쟁은 사실상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면서 "해외법인 설립과 현지 지분 투자 등을 병행하면서 선도금융의 최적화된 형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중국 북경에 문을 연 KB국민은행 북경지점. 어윤대 KB금융그룹 회장과 민병덕 KB국민은행장 등 경영진들이 북경지점을 둘러보고 있다. |
이런 맥락에서 시중은행들에게 동남아시아는 기회의 시장으로 손꼽힌다. 선진국 시장에 비해 국내 기업의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다, 국내 금융서비스의 노하우가 현지시장에서는 선진금융으로 평가받고 있어서다.
성공의 열쇠는 무엇보다 현지화 노력에 달려있다고 시중은행들은 입을 모은다. 외국의 금융사에 대한 규제가 강한 편이어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신한, 성공사례 꼽혀..국민도 '현지화' 승부수
'현지화'를 통한 신한은행의 베트남 진출 사례는 은행권 해외진출의 교과서로도 손꼽힌다. 지난 2011년 11월 공식 출범한 통합 신한베트남은행은 하노이와 호치민 등에 9개의 채널과 10억달러 내외의 자산을 보유한 베트남 내 빅2 외자은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한은행이 베트남 시장 공략의 기반을 다진 것은 장기적인 관점의 현지화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이 외국에 금융시장을 개방한 1992년 이래 지속적으로 투자와 영업활동을 확대하면서 현지 정부와 국민들의 신뢰를 쌓아간 것이다.
이런 신뢰 기반은 베트남 내 최초의 금융권 M&A인 신한베트남은행과 신한비나은행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마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신한베트남은행은 한국계 은행의 베트남 진출에서 한국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가지고 있다. 단적으로 한국계 은행 중 최초로 1993년 호치민에 대표 사무소를 설치하고, 1995년 6월 호치민 지점을 개설하면서 베트남시장에 진출했다. 2009년에는 한국계로는 유일하게 법인 전환에 성공하면서 현지화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신한은행은 현재 베트남시장의 비즈니스 모델 개발, 현지 신용평가 모델 구축 등에 초점을 맞춘 중장기 사업 확대를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테스크포스팀을 운영하면서 베트남 내 외국계 선도은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최근에는 신용카드 사업을 확대하면서 매출액 규모가 많은 법인카드 영업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고, 국내 파생상품을 편입하는 방식의 ELD 형태 구조화예금도 검토하는 등 새로운 상품으로 고객 니즈를 적극적으로 창출하면서 이를 통한 PB영업도 병행 추진할 계획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고객서비스를 현지 상황과 정서에 맞게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계획"이라면서 "지금의 지점수와 인지도로는 기반확대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꾸준하게 지점 또는 출장소를 개설해 나걸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역시 글로벌사업본부를 만들어 향후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중국 북경지점을 출범하는 등 중국 주요도시인 상해, 천진, 심양, 청도 등을 중심으로 영업네트워크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민은행의 중국시장 공략은 철저하게 현지화에 맞춰져 있다. 당장은 한국기업 및 교민이 주요 고객이지만 현지기업과 현지인을 대상으로 수익을 창출하려면 현지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KB금융그룹의 현지법인은 이사회의장(동사장) 및 사외이사로 중국 인사를 영입하고, 관리 및 영업담당 임원들을 현지금융전문가로 임명하는 등 현지 밀착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또 국민은행은 중국 현지은행과의 업무제휴를 추진하고, 국내 체류 외국인 중 절반 가량인 70만명에 달하는 국내 거주 중국인들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잇는 금융서비스 확대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중국시장 본격화는 국내의 KB고객은 물론 중국진출 한국계기업, 교민뿐만 아니라 중국기업 및 개인고객까지 다양한 금융수요에 부합하는 보다 신속하고 편리한 선진 금융서비스의 제공이 가능했다는 의미"라면서 "진정성 있게 중국 고객을 찾아 간다면 성장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