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신뢰 회복과 권리구제 통로 확대 기대
[서울=뉴스핌] 김기락 박민경 기자 = 재판소원과 법왜곡죄가 12일 0시 공포와 동시에 시행되면서, 법원 재판은 헌법재판소 심판과 형사책임 가능성이라는 이중의 점검 아래 놓이게 됐다. 그동안 제기돼 온 재판 불신과 권리구제 공백 논란에 대응하는 동시에, 법원 스스로 재판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가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사법부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김주현 대한변호사협회 제2정책이사는 "격론과 숙의 끝에 사법개혁 3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에 대해 국민적 여망과 우려가 공존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법개혁의 배경에 우리 수사 및 사법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불만족이 있었다는 사실을 정부, 법원, 국회가 모두 절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이상 권위와 위상에 기대 국민들에게 '비싸고 맛없는 빵'을 강요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라며 "이제는 이성과 합리, 국민들에 대한 납득가능성이 확보된 사법적 결론과 사법시스템 전반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 번 더 점검받는 재판"…권리구제 통로 넓힌 재판소원
정부는 이날 관보에 ▲법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일부개정법률'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일부개정법률' ▲대법관 증원안을 담은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을 게재해 공포했다. 법왜곡죄와 재판소원은 법안 공포 즉시 시행되며, 대법관 증원은 공포 후 2년 후인 2028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재판소원은 형사·민사·행정 사건에서 법원의 확정 재판 과정에서 기본권 침해나 적법 절차 위반이 있었다고 보는 당사자가 판결 선고일로부터 30일 안에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청구할 수 있게 한 제도다. 헌재가 헌법·법률 위반을 인정하면 해당 판결을 취소하고, 사건을 다시 재판하도록 돌려보낼 수 있어 기존 3심제 위에 헌법 기준에 따른 '마지막 점검'이 한 겹 더 쌓이는 구조다.
헌재는 연간 1만~1만5000건 안팎의 재판소원 접수를 예상하면서, 15년 이상 경력의 헌법연구관 8명으로 전담 사전심사부를 꾸리고, 재판관 3인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가 '1차 필터'를 맡는 체계를 준비했다. 헌재 관계자는 "재판소원 제도의 취지를 잘 살려 기본권 침해 사건에 대해서만 판단하고, 원칙적으로는 재판을 취소하는 데 그치며 후속 재판 절차는 법원의 몫으로 두겠다"고 설명해 헌재와 법원이 각자의 역할 안에서 균형을 맞추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초기에는 기대감 때문에 많이 제기되겠지만 대상성이 없는 사건이 상당수일 것"이라며 "실무상 1000건 중 한두 건 정도만 명백한 헌법·법률 위반 사건에서 취소나 파기환송이 이뤄지고, 나머지 99%는 법원의 법률 해석과 적용을 그대로 존중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대법원도 '우리 판결이 헌재에서 취소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적법절차와 기본권을 더 신중히 보게 될 것"이라며 "제도가 '함부로 재판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작동한다면, 사법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법왜곡죄·대법관 증원…책임성과 인프라 함께 키워야
법왜곡죄는 형사사건 재판에 관여하는 법관과 공소를 제기·유지하는 검사, 그리고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 등 수사기관이 타인에게 위법·부당한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법을 왜곡해 적용한 경우, 10년 이하 징역 또는 10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한 조항이다. 합리적 해석 범위 내 재량 판단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 만큼, 명백한 법 남용에만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가 담겼다. 법조계 일각에선 "부정한 청탁이나 정치적 압력에 흔들리는 재판·수사를 막는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며, 무너진 공정성에 제도적 안전장치를 더하는 효과를 기대한다.
노 변호사는 "지금도 판·검사에 대한 직무유기 고소가 적지 않지만 대부분 각하된다"며 "법왜곡죄도 1000건 고소에 한 건 들여다볼까 말까, 실제 적용 사례는 그보다 더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명백히 적용될 법을 고의로 배제하거나, 반대로 적용 요건이 아닌데도 억지로 가져다 붙이는 식의 고의적 왜곡에 한정해 운용한다면, 법왜곡죄가 오히려 공정한 재판과 수사를 지키는 최소한의 울타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관 증원은 재판소원 도입에 따른 부담을 분산하고, 상고심 적체를 완화하기 위한 장기 대책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재판관의 3분의 1 이상을 대법원 출신으로 임명해 양 기관의 법 해석 기준을 가깝게 맞추는 방안, 독일·스페인처럼 헌재 전원재판부를 둘로 나눠 사건을 분담하는 방안 등을 함께 검토하면, 재판소원과 법왜곡죄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주백 충남대 교수는 "사법 예산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05%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인력·공간·예산을 함께 늘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정책이사는 "사법개혁 3법은 개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전체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온 입법인 만큼, 경과를 면밀히 지켜보면서 우려가 제기되는 지점에 대한 제도적 보완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과정에서 '사법의 정치화'를 극히 경계해야 한다"며 "사법부의 독립성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이자 소수자 보호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제도인 만큼, 개혁과 독립성 사이의 균형을 정교하게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제부터는 '설계'의 시간…신뢰는 따라올 것"
전문가들은 재판소원과 법왜곡죄가 단기간에 사법 불신을 해소하긴 어렵지만, 잘 설계하면 "있어야 할 최소한의 안전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엔 공감대를 보인다. 정 교수는 "국민이 대법관 증원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법원 판결을 다시 한 번 받아볼 수 있는 재판소원은 국민 생활과 직접 맞닿아 있다"며 "그동안 법원 재판으로 고통받았던 사람이 줄어드는 방향이라면 절차 자체를 나쁘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했다.
장 교수도 "현재 낮아진 사법 신뢰가 단기간에 회복되기는 어렵겠지만, 전담 재판부와 사전심사, 사건 범위 조정 등을 통해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하면 필요한 통제 장치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이번 사법개혁 3법이 '정치·사회적 갈등을 지연시키는 4심제'로 남을지, '억울한 판결을 한 번 더 거르는 최소한의 안전판'이 될지는 결국 운용에 달렸다"며 "사법부가 이번 제도를 계기로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여간다면, 국민 신뢰는 뒤따라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