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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지구촌 돋보기 ] ③심각한 민족갈등과 인종청소의 만행

기사입력 : 2020년02월12일 08:00

최종수정 : 2020년03월10일 16:08

[편집자] 2020년 시작부터 미국과 이란이 무력으로 충돌하면서 전쟁공포가 피어오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국가이기주의로 인한 혼돈이 만연하고 있다. 국제사회에 관용과 협조가 실종되고 평화와 공존번영이란 이념도 찾아보기 힘들다. 자유무역 질서가 손상되면서 무역분쟁이 일상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조화로운 시장질서에 기반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구촌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머리를 맞대 인류의 희망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국제사회의 말기적 현상을 짚어본다. 

인간의 역사는 갈등과 전쟁의 반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한 민족이 약한 민족을 정복해 지배하거나 심할 경우 아예 말살하기도 했다. 고대 로마가 포에니전쟁에서 승리한 뒤 카르타고가 재기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파괴와 학살을 자행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기독교 교본인 성경에서도 인종과 민족간 갈등의 불가피성을 기록하고 있다. 이삭과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서로 갈등하고 경쟁하면서 살아가도록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그 결과가 오늘날 중동분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종갈등은 유전되는 신체적 특징과 성격·지능·문화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인종주의 이론에 따라 차별이 정당화되면서 발생한다. 인종주의 이론에는 선천적으로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수하다는 관념이 깔려있다.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혐오현상인 제노포비아(Xenophobia)가 녹아있다. 인종갈등에는 피부색이나 모발, 얼굴형 등 생물학적 차이와 함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요인으로 인한 전통과 습속의 차이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심각한 문제는 인종갈등이 통상 지역분쟁과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더 심한 경우 '인종청소'라는 끔찍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인권유린의 극한을 달리는 범죄이며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개념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인종갈등의 예로는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을 촉발시킨 미국의 흑백갈등,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정책이 있다. 1994년 흑인정권 탄생 이전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흑인을 지배하는 사회였다. 당시 피부색에 따라 주거지와 업무 공간을 구별하고 인종간 교류나 접촉을 금지하는 정책으로 극심한 반발과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흑인과 백인간 인종갈등은 외형상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여전하다고 느낀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일단 사라졌지만, 사적인 방식으로는 인종간의 미묘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내 규정을 바꿔 유색인이 취업 시 불이익을 받도록 한다든지, 서비스 업종에서 유색인에게 미묘하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방식이다. 더욱이 아직도 간혹 백인우월주의를 표방하는 무력단체 KKK단이 흑인을 대상으로 살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인종청소의 예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유태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Holocaust)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당시 학살 당한 유태인 수는 무려 600만명에 이른다. 이 외에도 아메리카원주민인 인디언 학살, 20세기 초반 오스만제국의 청년투르크당이 자국 내 기독교 신자인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한 사건,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난징대학살, 크메르 루주 공산정권 치하에서 일어난 캄보디아 킬링필드(Killing Fields),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학살, 수단 내전의 다르푸르 학살, 르완다 내전 등이 역사적 아픔으로 남아있다.

19세기 말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그동안 지배를 받던 여러 민족들이 독립을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각국의 이해문제가 복잡하게 얽히고 상충하면서 발칸반도는 '세계의 화약고'가 돼버렸다. 원래 발칸반도에는 세르비아인, 슬라브족, 알바니아인, 집시 등 다양한 민족이 뒤엉켜 살았다. 당연히 이들의 생활관습이 달랐고 그 뿌리가 되는 문화도 상이했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민족들이 통일된 규범과 질서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그렇기에 다양한 민족간의 갈등은 여태껏 지속되고 있다. 이들 사이에는 걸핏하면 분쟁이 일어났고 마침내 세계대전으로까지 비화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대형 인종분쟁은 보스니아 내전이다. 원래 유고슬라비아연방은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등 6개 공화국과 2개 자치주로 이뤄져 있었다. 강력한 지도자 요시프 티토가 1980년 사망하자 세르비아를 제외한 대부분이 연이어 연방탈퇴와 독립을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유고연방을 지키려던 세르비아계는 독립을 원하는 무슬림 보스니아계 및 크로아티아계와 갈등을 겪게 되고 이것이 전쟁으로 번졌다.

1992년 보스니아가 독립국가로 공식 인정받으며 국제연합(UN)에 가입하자 세르비아 민병대의 보스니아 마을공격으로 보스니아 내전이 시작됐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개입과 미국의 중재로 3년 9개월 만에 전쟁은 끝났지만 상흔은 어마어마했다. 특히 세르비아계가 8372명의 무슬림을 희생시킨 스레브레니차(Srebrenica) 대학살은 인종청소로 불릴 정도로 참혹한 살육으로 기록됐다.

또 다른 대표적 인종간 분쟁이 코소보(Kosovo)사태다. 1998~1999년에 걸쳐 인구 200만명의 코소보에서는 조직적 인종청소가 벌어졌다.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뒤부터다. 이 전쟁으로 150만 난민이 발생했고 1만명이 죽었다. 가해자는 세르비아 세력이고 피해자는 코소보 주민의 90%를 차지하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이었다.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자치권 확대를 바랐지만 '위대한 세르비아 건설'을 내세워 권력을 잡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은 이들을 무력으로 짓밟았다. 결국 NATO 평화군의 개입으로 전쟁은 끝났고, 코소보는 UN의 보호령이 됐다.

현재 진행되는 가장 심각한 민족분쟁은 단연 쿠르드족 분리 독립 문제다. 쿠르드족은 인구 3200만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유랑민족이다. 그들은 지난 1세기 동안 서구사회와 주변국 이해관계에 휘둘려 갖은 고초를 겪었다. 터키나 이란, 시리아 등으로 흩어져 살게 됐고, 자신이 거주하는 국가로부터의 강제동화와 차별 정책에 맞서 처절한 생존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오늘날 쿠르드인들의 비극적 운명은 1차 세계대전 직후 찾아왔다. 수백 년 동안 오스만제국의 일원이던 그들은 1919년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크게 고무돼 자치와 독립을 꿈꿨다. 그러나 1923년 체결된 로잔 조약에 따라 쿠르드인들이 살던 지역인 쿠르디스탄이 인위적 영토구획에 의해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르메니아 5개국에 강제분할 귀속됐다.

현재 쿠르드족은 터키 1500만명, 이라크 500만명, 이란 800만명, 시리아 200만명, 인근 아랍과 유럽 등지에 약 200만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가장 많은 쿠르드인이 사는 터키는 동화와 민족통합 정책을 강제로 추진하고 있다. 터키정부는 이들 쿠르드인을 다른 하나의 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산악 터키인'이라고 부른다.

터키정부의 강제 동화정책은 결국 1978년 쿠르드 노동당(PPK)이라는 무장 테러조직의 등장을 자극했다. PKK는 터키 군경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가하는 등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이후 쿠르드인들의 자국어 허용 등 유화책을 펼치고 있지만 독립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기에 분쟁의 불씨는 계속 남아 있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인종과 영토, 종교와 문화적 갈등으로 수많은 민족과 국가간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마치 증오와 갈등, 분쟁의 도가니가 돼가는 느낌이다. 그 중에도 가장 많은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은 아프리카다. 수단과 콩고가 이미 남북으로 쪼개졌고 지금도 수많은 부족간 유혈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족과 위구르족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 중국 신장지역의 소요, 수 십년에 걸친 바스크족의 스페인 분리 독립 무장투쟁, 우크라이나에서 이어지는 러시아인과 유혈분쟁, 영국 잉글랜드 지방과 스코틀랜드의 갈등, 미얀마의 로힝야족 탄압 등도 결국 상이한 문화와 인종간 갈등과 충돌이다.

법적으로 인종차별이 금지됐다지만 인종차별은 말끔히 사라진 건 아니다. 실제 다른 인종과 문화가 부딪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인도의 신분제 카스트제도 역시 법적으로 금지됐지만 여전히 출신 성분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호주에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유색인종의 이민을 제한하는 백호주의(白豪主義) 경향이 여전하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민족갈등의 해결책이 잘 보이지 않을 뿐더러, 날이 갈수록 갈등의 정도가 한층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철환 mofelee@hanmail.net

▶이철환은 재정경제부 국고국장과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등을 지냈다.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암호화폐의 경제학', '인공지능과 미래경제', '을의 눈물'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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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네르, 생애 첫 윔블던 단식 우승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세계 1위 얀니크 신네르(이탈리아)가 생애 첫 윔블던 남자 단식 정상에 올랐다. 신네르는 1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올잉글랜드클럽 센터코트에서 열린 2025 윔블던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2위)를 3시간 4분 만에 3-1(4-6 6-4 6-4 6-4)로 꺾었다. 올해 1월 호주오픈에 이은 시즌 두 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품에 안고 상금은 300만 파운드(약 55억8000만원)를 거머쥐었다. 이탈리아 선수가 윔블던 단식 정상을 밟은 것은 남녀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2021년 남자 단식 마테오 베레티니, 2024년 여자 단식 자스민 파올리니가 결승에 진출했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런던 로이터 =뉴스핌] 박상욱 기자 = 신네르가 13일(현지시간) 열린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에서 알카라스를 꺾고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2025.7.13 psoq1337@newspim.com 이번 결승은 지난 프랑스오픈 결승에 이은 두 선수의 메이저 결승 리턴 매치. 당시 신네르는 알카라스에게 2-3(6-4 7-6<7-4> 4-6 6-7<3-7> 6-7<2-10>)으로 패해 우승을 놓쳤다. 당시 트리플 매치 포인트를 날린 신네르는 경기 후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경기'라며 절치부심했고 한 달 만에 완벽하게 되갚았다. 신네르는 알카라스에게 당하던 5연패 사슬을 끊었다. 둘의 상대 전적은 여전히 알카라스가 8승 5패로 앞선다. 신네르는 이날 알카라스 특유의 드롭샷과 로브, 변칙 플레이에 흔들리지 않았다. 특히 3세트 게임스코어 4-4에서 브레이크에 성공하며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왔다. 4세트에서도 다시 한 번 브레이크로 균형을 깼다. 게임스코어 5-4, 자신의 마지막 서브 게임에서 신네르는 평균 200km/h에 가까운 강서브로 트리플 챔피언십 포인트를 만들었고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우승을 확정 지었다. [런던 로이터 =뉴스핌] 박상욱 기자 = 신네르가 13일(현지시간) 열린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에서 알카라스를 꺾고 우승한 뒤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자빈의 축하를 받고 있다. 2025.7.13 psoq1337@newspim.com 경기 후 신네르는 "파리에서 정말 힘든 패배를 겪었기 때문에 감정이 북받친다"며 "결국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다. 우리는 패배를 받아들이고 계속 노력했고, 그 결과 이렇게 트로피를 들게 됐다"고 말했다. 하드 코트 메이저에서만 세 차례(2023 US오픈, 2024 호주오픈 포함) 우승했던 그는 이번 잔디 코트에서 처음 정상에 올라 메이저 전천후 강자임을 입증했다. 유일하게 우승이 없는 클레이코트 메이저 프랑스오픈까지 제패할 경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지난해 도핑 양성 반응이 나왔던 신네르는 도핑 사실이 알려진 뒤로는 올해 호주오픈에 이어 두 번째 메이저 트로피를 따냈고 도핑으로 인한 3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마친 올해 5월 초 이후로는 이번이 첫 메이저 우승이다. 반면 알카라스는 윔블던 3연패 도전에 실패했다. 통산 6번째 메이저 결승전에서 처음으로 패배를 당했고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을 위해선 여전히 호주오픈 우승이 필요하다. [런던 로이터 =뉴스핌] 박상욱 기자 = 신네르(왼쪽)와 알카라스가 13일(현지시간) 열린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을 마치고 축하와 위로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5.7.13 psoq1337@newspim.com 그는 "결승에서 지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다"라면서도 "하지만 오늘은 야닉의 날이다. 훌륭한 테니스를 한 그에게 축하를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네르와 알카라스는 지난해 호주오픈부터 치러진 7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타이틀을 전부 나눠 가졌다. 2023년엔 알카라스가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을, 신네르가 호주오픈과 US오픈을 차지했고, 올해는 다시 신네르가 호주오픈과 윔블던을, 알카라스가 프랑스오픈을 가져갔다. 이제 두 선수는 메이저를 양분하는 확실한 '빅2'로 자리매김했다. psoq1337@newspim.com 2025-07-14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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