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화 약세→수입품 가격 인상→저소득층 타격
프랑스 정부, EU 떠나려면 부채 '2조유로' 갚아야
[뉴스핌=김성수 기자] 프랑스 극우성향인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대표가 오는 4~5월 프랑스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르펜 후보는 프랑스의 유럽연합(EU) 탈퇴(프렉시트·Frexit)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유로화 대신 프랑스 프랑을 부활시키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프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프랑스가 겪게 될 상황이 '리먼브라더스 파산'보다 심각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프랑스 내 물가와 금리가 상승할 것이며, 프랑화가 유로대비 가파른 약세를 보이면서 프랑스 정부와 금융기관들이 빚더미에 오른다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일제히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프랑화 약세→수입품 가격 인상→저소득층 타격
프랑스가 EU를 탈퇴하면서 유로화를 포기하고 프랑화를 다시 쓸 경우 무역수지 자체에 나타날 영향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현재로서는 프랑화 약세로 인해 수출에는 긍정적 영향, 수입에는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프랑스 수입품목의 주요 소비층인 저소득층이 더 타격이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프랑스 국제경제연구센터(CEPII)의 앤 로르 델라트 부회장은 독일 일간지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가 유로 사용을 포기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프랑스 수출품 가격이 더 하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블룸버그통신> |
그는 "유로가 도입될 당시 1유로는 6.5프랑의 값어치가 있었다"며 "이제는 1유로 값이 최소 8프랑은 된다"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 수출품을 팔 때 외국인들이 지불해야 되는 돈이 더 적어진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프랑스 기업들의 수출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프랑화 약세는 곧 프랑스의 수입품 가격이 비싸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 프랑스의 수입액은 수출액보다 481억달러가 많았다.
프랑스의 주요 수입품목은 기본적인 식품과 원유, 가스, 의류 등이다. 그런데 저임금 소득자들은 소득 가운데 식량과 같은 수입품에 지출하는 비중이 높다.
올리비에 파스트레 파리 제8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프랑화가 약세가 된다면 프랑스 내 빈민층이나 중하위 소득층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EU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가장 호소하는 계층"이라고 말했다.
◆ 프랑스 정부, EU 떠나려면 '2조유로' 갚아야
파스트레 교수는 프랑스가 유로화를 포기할 경우 예상되는 또 다른 악재는 금리 상승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부는 현재 차입하고 있는 유로화 국채에 대한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현재 프랑스의 유로화 부채는 2조유로가 넘어, 프랑스 연간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육박한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프랑스가 EU를 떠나려면 이 부채를 상환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프랑스 정부는 유로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프랑화를 유로화로 대규모 환전해야 하며, 그러려면 프랑스 국민에게서 프랑화를 빌려야 한다.
이 경우 프랑화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중앙은행인 방크드프랑스의 프랑수아 빌루아 드갈로 총재는 "유로화 사용이 프랑스 금리를 약 1.5%포인트(p)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며 "프랑스의 EU 탈퇴를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프랑스는 EU를 떠나겠다고 주장한 후 국채 금리가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다. 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는 연초에는 0.7% 미만이었으나, 최근 마린 르펜의 당선과 프렉시트 현실화에 대한 불안감으로 1% 수준으로 상승했다.
파스트레 교수는 "저소득층은 보유한 자산이 적어 대출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들은 금리가 오를 경우 이자 부담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가 유로 부채를 갚기 위해 통화 발행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프랑스 소비자물가가 오를 것이기 때문에 저소득층에게 고통을 주게 된다.
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 추이 <자료=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
◆ BNP파리바 붕괴, 리먼브라더스 파산보다 10배 충격
이에 따라 프랑스가 유로를 떠날 경우 프랑스 경제에 재앙이 닥칠 거란 전망이 나온다.
프랑스 연구기관 세르클레 드 레튀드의 필립 크레벨 거시경제학자는 "프랑스는 유로 부채를 상환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파산하게 될 것"이라며 "유로 대신 프랑화를 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 정부 뿐만 아니라 유로와 달러 부채를 갖고 있는 은행과 보험사들도 줄줄이 파산할 것"이라며 "BNP파리바는 유럽에서 HSBC 다음으로 큰 은행인데, 이 은행이 무너진다면 리먼브라더스 파산보다 10배의 충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프랑스가 EU를 떠나는 게 손해라는 분석도 있었다. 영국이 EU 탈퇴를 결정한 가운데 EU의 양대 축은 사실상 독일과 프랑스가 맡고 있다. EU 회원국들이 구심점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프랑스 보험사 악사(AXA)의 토마스 부베를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경제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브렉시트 이후 유럽은 다시 구심점을 찾고 있으며,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가 이 역할을 맡고 있다"며 "유럽은 다시 회복될 것이며 프렉시트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필립 크레벨은 "EU 역시 주요 회원국인 프랑스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성수 기자 (sungs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