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AI 기업이 헌책을 구매해 스캔·학습하는 과정에서 소유권과 저작권의 구별이 쟁점이 됐다.
- 미국 법원은 특정 모델 학습과 내부 대체본 제작은 공정이용으로 봤지만, 해적본 장기 보관은 부정했다.
- 한국에서도 구매만으로 복제권이 이전되지 않아 이용 범위와 시장 영향에 따른 별도 검토가 필요하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헌책이 생성형 AI의 학습 자료로 활용되면서 책을 구매한 기업의 이용 권한이 쟁점이 되고 있다. 책을 샀다면 그 내용을 AI에 자유롭게 학습시켜도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책이라는 물건의 소유권과 그 안에 담긴 저작물의 이용 권한을 구별해야 한다.
구매 이후의 스캔, 데이터 보관, 학습과 서비스 제공은 각각 저작권법의 검토 대상이 된다. AI 기업이 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해할 만하다. 편집을 거친 책은 문장과 논증이 비교적 정돈되어 있고, 긴 문맥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앤트로픽 사건의 법원도 잘 구성된 분석과 좋은 글쓰기가 학습 자료로서 갖는 가치를 언급했다. 다만 책이 유용하다는 사실과 특정 책의 무단 이용이 정당하다는 판단은 별개다. 법원 역시 책을 사용하지 않는 다른 학습 방법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미국의 바츠 대 앤트로픽 소송이다. 작가 안드레아 바츠 등은 2024년 앤트로픽이 자신들의 책을 무단 복제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앤트로픽은 해적 사이트에서 수백만 건의 도서 파일을 내려받았고, 2024년 봄부터는 중고책을 포함한 종이책도 대량 구매했다. 구매한 책은 제본을 해체해 스캔한 뒤 종이 원본을 폐기하고, 검색 가능한 디지털 파일로 보관했다. 이 자료 중 일부가 대규모 언어모델 학습에 사용됐다.
2025년 6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은 공정이용에 관한 일부 약식판결에서 이 과정을 나누어 판단했다. 특정 모델을 학습시키는 복제, 구매한 종이책을 디지털 자료로 대체하는 복제, 해적본을 취득해 영구적인 자료실을 구축하는 행위가 서로 다른 이용이라는 것이다. 이 구분을 생략하면 판결의 의미를 잘못 전달하게 된다.
법원은 특정 모델의 학습을 위한 복제에 있어서는 공정이용을 인정했다. 원작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책의 목적과 언어의 통계적 관계를 분석해 새로운 문장을 생성하는 학습의 목적이 다르다는 점을 중시했다. 여기에는 해적본에서 만들어진 학습용 복제도 포함됐다. 그러나 원고들이 사용자에게 제공된 결과물의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지 않았다는 사실관계가 중요했다. 원문이나 실질적으로 유사한 표현을 재현하는 서비스까지 같은 결론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구매한 종이책의 디지털 전환에도 별도로 공정이용이 인정됐다. 법원은 종이 원본을 폐기하고 내부에서 검색 가능한 대체본을 보유했으며, 외부에 배포하지 않았다는 사정을 고려했다. 이 판단을 '책을 사서 파쇄하면 스캔이 언제나 합법'이라는 공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구매한 물건을 처분할 권한과 저작물을 복제할 권한은 다르고, 이 사건의 디지털 전환은 구체적 이용 방식에 대한 공정이용 판단으로 허용된 것이다.
반면 해적본을 내려받아 장기간 보관한 자료실 구축에는 공정이용이 인정되지 않았다. 훗날 학습에 사용할 가능성이나 나중에 같은 책을 구매했다는 사정만으로 이전의 무단 취득이 정당화되지는 않았다. 당시 결정은 이 부분의 책임과 손해배상액을 최종 확정한 판결은 아니었다. 이후 당사자들은 합의했고, 법원은 2026년 7월 20일 15억 달러 규모의 집단소송 합의를 최종 승인했다. 이는 구매한 헌책의 스캔에 그만큼의 배상액을 선고했다는 뜻과는 다르다. 이 합의가 향후의 AI 학습이나 결과물 제공을 포괄적으로 허락한 것도 아니다.
학습이 출판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신중하게 읽어야 한다. 법원은 AI가 경쟁 작품의 생산을 늘릴 가능성과 학습용 라이선스 시장의 형성 가능성을 고려하면서도, 이러한 사정 자체를 저작권법상 공정이용을 부정할 시장 손해로 보지 않았다. 저작권이 보호하는 표현의 시장과, 기존 작품에서 배운 뒤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경쟁을 구별한 것이다. 다만 이는 해당 미국 법원의 판단이며, 한국에서 학습용 시장의 보호 범위까지 같은 방식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출발점은 구매와 복제의 구별이다. 저작권법 제20조에 따라 적법하게 판매된 종이책의 재판매에는 배포권 소진이 적용될 수 있다. 그래서 헌책을 사고파는 행위와, 그 내용을 새 디지털 파일로 만드는 행위는 법적으로 다르다. 제16조가 정한 복제권은 책을 구매했다고 자동으로 이전되지 않는다.
스캔과 학습 과정에서 복제가 이루어진다면 이용허락이나 법률상 예외가 있는지 따로 살펴야 한다. 이때 핵심이 되는 규정은 저작권법 제35조의5의 공정이용이다. 저작물의 일반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않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아야 하며, 이용 목적과 성격, 저작물의 종류와 용도, 이용된 부분의 비중과 중요성, 현재 또는 잠재적 시장과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영리 목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침해가 되는 것도, AI 학습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외가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전체 책을 복제하는 필요성과 보관·이용 범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유료 디지털 교과서를 구매해 학습시킨 뒤 경쟁하는 교과서나 문제집을 만드는 경우에는 공정이용 인정에 불리한 사정이 생길 수 있다. 구매 사실 하나로 시장 대체 문제까지 해결되지는 않는다
헌책의 권리가 이미 소멸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경계해야 한다. 중고책이거나 절판됐다는 사정, 출판사가 문을 닫았다는 사정은 저작권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법상 저작재산권의 보호기간은 원칙적으로 저작자 생존 기간과 사망 후 70년이다. 오래된 원작의 보호기간이 끝났더라도 번역문이나 삽화에는 별도의 권리가 남아 있을 수 있다. 학습 자료의 적법성을 확인할 때에는 발행 연도뿐 아니라 저작자와 해당 판본의 권리관계까지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이려면 AI 기업은 자료의 출처와 이용 과정을 관리해야 한다. 어느 판본을 어떻게 확보했고, 어떤 모델 학습에 사용했으며, 원본과 가공본을 어디에 얼마나 보관하는지 기록할 필요가 있다. 외부 업체에 스캔이나 전처리를 맡길 때에는 재사용과 재판매의 범위도 정해야 한다. 원작의 표현이 서비스에서 재현되는 위험을 점검하고, 권리자의 이의 제기를 처리할 절차를 갖추는 일도 필요하다. 이런 관리 체계가 공정이용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지만, 이용의 범위와 영향을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출판계는 AI 학습용 거래를 설계할 때 실제로 누가 어떤 권리를 허락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종이책 출판에 관한 계약만으로 출판사가 모든 AI 이용을 허락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저자와 번역자 등 관련 권리자의 계약을 검토하고, 학습용 복제와 원문 검색·제공의 허용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사용료와 수익 배분, 자료 보관 기간, 제3자 제공 조건을 구체화하면 AI 기업도 예측 가능한 조건 아래 출판물을 학습자료로 확보할 수 있다.
자료 확보 방식은 책의 보존과도 연결된다. 절판본이나 희귀 도서를 대량으로 파쇄하는 방식이 확산될 경우 실물 자료를 지킬 방안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AI 학습을 위한 디지털화와 도서의 보존이 함께 이루어지도록 공공기관과 출판계가 협력할 수 있다.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서 모든 실물 자료의 폐기가 바람직해지는 것은 아니다.
바츠 사건이 주는 과제는 각 이용 단계의 법적 근거를 구체화하는 일이다. 적법하게 책을 확보하고, 복제와 학습의 범위를 설명하며, 서비스가 원작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관리해야 한다. 공정이용이 인정될 여지는 열어 두되, 그 범위를 넘어서는 이용에는 권리자와의 계약을 마련해야 한다. 이 경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과 거래 조건이 갖추어질 때, 책에 축적된 지식을 AI 발전에 활용하면서 다음 책을 쓸 창작자의 기반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박정인 교수(법학박사)는 대통령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본위원회 위원, 문체부 저작권보호심의위원회 심의위원, 문체부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 상임위원, 인터넷주소분과위원회, 웹콘텐츠 활성화위원회 자문위원, 강동구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의위원, 경찰청 사이버범죄 강사 등 여러 국가 위원을 역임했다. 공공기관 대상 법령입안강의를 하며, 대학에서 특허법, 저작권법, 산업보안법, 과학기술법, 정보보안법, 디지털증거법, ICT트러스트공학, 일반 산업안전, 중대재해법 등을 강의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인텔리콘 메타연구소, 해인예술법연구소, 숙명여대 초빙교수, 단국대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