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 전문업체 설립·바이오 벤처 자금 투자
파이프라인 확대 추진.."업계 전반 건강한 환경 조성 계기 될 것"
[서울=뉴스핌] 박다영 기자 =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변하고 있다. 신약 개발을 첫 단계부터 밟아가는 고집스러운 독자개발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십수년 독자개발을 고집하다 몰락하는 제약사를 지켜보며 얻은 교훈이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신약후보물질 발굴때부터 전략적 접근을 통해 기술이 있는 바이오 벤처에 투자하거나 전문 업체를 신설하는 등 효율적 운영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분위기가 제약·바이오 기업의 몰빵식 독자개발보다 개발 시간과 신약 탄생의 가능성을 높이고 바이오벤처는 성장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선순환 생태계 조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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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티팜·메디포스트, 신약개발 전문회사 설립
1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에스티팜과 메디포스트는 신약개발 전문 업체를 신설했다.
우선 에스티팜은 미국 샌디에이고에 리보핵산(RNA)과 키메라항원수용체·자연살해 T세포(CAR-NKT) 신기술 플랫폼을 활용한 신약 개발 전문 바이오텍 '레바티오 테라퓨틱스'(Levatio Therapeutics)를 설립했다.
레바티오는 원형 RNA와 CAR-NKT 플랫폼을 구축하고 면역항암제와 자가면역질환치료제 개발에 주력할 예정이다. 원형 RNA는 핵산분해효소에 대한 높은 저항성으로 선형 mRNA에 비해 반감기가 2.5배 길고 안정하다. NKT는 T세포와 NK 세포의 특징을 동시에 가진 면역세포로, 기존 CAR-T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해 대량생산과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면역 거부 반응도 낮아 규격화된 제품으로 제품 개발이 가능하다.
향후 레바티오는 100여개의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다양한 항암제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메디포스트는 제대혈유래 면역세포치료제 전문개발회사 이뮤니크를 설립했다. 메디포스트는 이 회사의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다.
이뮤니크는 제대혈(신생아 탯줄과 태반에 들어있는 혈액)에서 분리하고 배양한 면역세포인 T세포와 'NK세포(자연살해세포)'를 활용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와 면역항암제 개발을 맡게 된다.
메디포스트 관계자는 "기존 줄기세포치료제 연구조직과 별도로 새로운 연구 인력이 주축이 돼 연구개발(R&D)에 집중하고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전문 면역세포치료제 회사 설립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두 회사에 앞서 전통 제약사들도 신약개발 전문 바이오 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신약후보물질 발굴 속도를 높이고 있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9월 '아이엔 테라퓨틱스'를 설립했다. 아이엔 테라퓨틱스는 대웅제약의 이온 채널 신약 개발 플랫폼과 비마약성 진통제·난청치료제·뇌질환 치료제 개발을 맡는다. 제일약품도 100% 출자해 '온코닉 테라퓨틱스를 설립'했고, 일동제약은 '아이디언스'를 자회사로 신설했다.
◆ 유한양행·동화약품·한독, 바이오 벤처에 자금 투자
자회사 설립 외에 바이오 벤처에 투자해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하는 방법도 있다. 바이오 벤처에 투자해 회사가 개발중인 물질을 함께 연구하면서 발굴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다.
유한양행은 최근 '에이프릴바이오'에 100억원을 추가 출자하면서 2대 주주가 됐다. 유한양행이 투자한 금액은 총 310억원이다.
이번 투자로 유한양행은 에이프릴바이오의 독자적인 플랫폼 기술 SAFA를 활용한 공동연구를 가속화할 방침이다. SAFA는 인간 항체 라이브러리기술과 항체 절편을 활용해 반감기를 증대시키는 지속형 플랫폼 기술로 다양한 치료제 개발에 적용할 수 있다.
동화약품은 '넥스트바이오메디컬'에 40억원 규모를 투자했다. 넥스트바이오메디컬은 혁신형 치료재료 전문기업으로, 내시경용 체내지혈제(넥스파우더)와 혈관색전미립구(넥스스피어) 등을 제품화했다. 현재 고분자 플랫폼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간암치료용 혈관색전미립구, 황반부종치료제 등을 개발하고 있다.
한독은 '웰트'에 30억원의 지분을 투자했다. 양사는 알코올 중독과 불면증에 대해 디지털 치료제를 공동개발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일동제약은 지난달 '아보메드'에 60억원을 투자했다. 신약 연구개발 및 사업모델 발굴 등에서 협력하기 해서다. 아보메드는 윌슨병 치료제, 류마티스 및 건선 치료제, 마취제 등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제약·바이오 업체가 직접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하지 않고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전략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업계 전반에 선순환 구조를 가져올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물질을 발굴하려는 회사는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연구개발 자회사는 전문 역량을 키울 수 있다. 투자를 받는 벤처 기업은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것 외에도 새로운 성장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바이오 업계가 고르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 마련에 도움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제약사 내부에서 개발 역량이 부족하거나 투자가 어려운 경우 별도 회사를 신설하거나 바이오 벤처에 투자하는 것이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라며 "제약사가 가진 자금력으로 여러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다국적 제약사는 대부분 인수합병(M&A)을 통해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있다"며 "물질 선별이 어렵다면 (국내사들이 하고 있는) 데이터가 좋은 회사를 찾는 것이 방법이다. 바이오 벤처에는 기업공개(IPO) 외에 성장 기회가 될 수 있고, 업계 전반이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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