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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부른 만세]④윤봉길 손녀 “오늘날 대한민국, 할아버지가 꿈꾼 나라인지‥.”

평화당,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맞아 中 상해 방문
‘윤봉길 의사 의거지’ 루쉰공원 등 찾아 애국지사 정신 기려
정동영 “지금 우리 모습, 윤 의사 꿈꾼 자주독립 통일과 거리 멀어”

  • 기사입력 : 2019년02월22일 15:40
  • 최종수정 : 2019년02월22일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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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1운동 100주년이다. 3·1운동은 이후 민족적 독립운동의 근본이 됐고 대한민국 건국의 원천이 됐다.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이라는 3·1 정신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유구히 계승되고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의 상처는 다 아물지 않았고 식민 잔재는 여전히 곳곳에 스며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 선조들이 '못다부른 만세'는 우리에게 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상해=뉴스핌] 조재완 기자 = “오늘날 대한민국이 할아버지께서 꿈꾸셨던 나라인지 생각해봅니다.”

윤봉길 의사의 손녀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은 지난 20일 중국 상해 루쉰공원의 윤 의사 동상 앞에 서서 이 같이 읊조렸다.

윤 전 관장은 “할아버지, 지금 제 소원은 대한민국 모두가 마음으로 하나된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것”이라며 “할아버지와 같은 어르신들이 그토록 원하셨던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그 바람을) 다시 한 번 꿈꿔보며 그 길이 무엇인지 오늘 이 자리에 오며 생각해봤다. 그 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 모두의 삶을 가다듬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민주평화당 지도부는 기념일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함께 임시정부 독립운동의 성지인 상해를 찾았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대한민국 뿌리는 이 곳 상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19년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최초 민주공화정, 임시정부는 그 해 4월 11일 상해에서 탄생했다. 항일독립투쟁 전선에 새 활력을 불어넣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상해 루쉰공원에서 거행됐다. 

임정 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끝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이 곳에서 영면했다. 그래서 상해는 이역만리에서 항일 독립투쟁을 벌인 순국 선열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상해=조재완 기자] 민주평화당 지도부는 지난 20일 오후 중국 상해 루쉰공원에 위치한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참아 참배했다. 왼쪽부터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 선생의 증손 이항증 씨, 정동영 평화당 대표, 윤봉길 의사 손녀인 윤주경 전 독림기념관장. 2019.02.20. chojw@newspim.com

윤봉길 의사 "저는 이제 1시간 밖에 소용 없다" 김구 선생과 시계 바꿔

평화당 지도부와 윤 전 관장은 이날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참배하고 역사적 현장에 다시 섰다. 

이 자리에서 1932년 4월 29일 윤 의사는 일왕 생일연회장 경축대를 향해 폭탄을 투척했다. 그가 던진 물통 폭탄은 시게미츠 마모루 대사와 우에다 겐키치 중장, 노무라 요시부로 중장 사이로 떨어졌다.

중국 신보는 당시 상황에 대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니 사령대가 ‘폭탄이다’라고 외치며 이들은 10여 발자국 물러섰다. 잠시 후 폭탄이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고 전했다. 거사를 통해 시라카와 요시노리 총사령관이 사망하는 등 일본군 수뇌부는 치명타를 입었다. 

정동영 평화당 대표는 “윤 의사가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일본 수뇌부를 척살한 현장에 민주평화당 당원들과 독립지사 후손 선생님들이 함께 섰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거사를 치르기 전 윤 의사가 감구 선생과 시계를 맞교환한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봤다고 했다.  

87년 전 그 날의 모습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도 생생히 그려져 있다. 김구 선생은 윤 의사와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 거사를 앞뒀음에도 윤 의사는 태연한 기색이었다고 김구 선생은 회고했다.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지며 7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자 윤 의사는 떠날 채비를 했다. 품에 지닌 회중시계를 꺼냈다. 그는 “제 시계는 6원을 주고 구입한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불과 2원짜리다. 저는 이제 1시간 밖에 더 소용없다”며 김구 선생의 손목시계와 자신의 것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마지막 길을 떠나기 전 윤 의사는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꺼내 김구 선생 손에 쥐어주려 했다.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자동차가 서서히 움직였다. 김구 선생은 메이는 목소리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후일 지하에서 만나자.”

김구 선생은 "윤군이 차창으로 나를 향해 머리를 숙이자 자동차는 엔진소리를 울리며 천하영웅 윤봉길을 싣고 홍커공원(現 루쉰공원)으로 질주했다"고 마지막 순간을 기억했다.

당시 청년 윤봉길은 겨우 24세였다. 

[상해=조재완 기자] 민주평화당 지도부와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20일 중국 상해 루쉰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뒤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고 있다. 2019.02.20. chojw@newspim.com

"초개와 같이 몸 던진 뜨거운 피 있었기에 광복 찾을 수 있었다"

정 대표는 “24살 청년의 순수한 조국애와 독립과 자유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에, 그리고 초개(草芥, 풀과 티끌을 아울러 이르는 말. 흔히 지푸라기를 말한다)와 같이 몸을 던진 뜨거운 피가 있었기에 우리는 세계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고 광복을 찾을 수 있었다”고 넋을 기렸다. 

그는 “그러나 지금 우리 모습은 윤 의사가 꿈꾼 자주독립 통일, 그리고 온전한 민주공화국의 완성본과는 거리가 멀다. 완전한 조국의 독립과 자유, 온전한 민주공화국 완성을 위해, 그 각오를 새기기 위해 홍커공원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 의사의 숭고한 정신과 희생을 기리며 늘 저희도 옷깃을 여기며 살아있는 동안 민족과 온전한 민주공화국의 완성, 그리고 조국 통일 완성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탤 것을 다짐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평화당 지도부와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윤 의사 기념관 앞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대한민국 만세’ 구호를 삼창했다. 임정 경무국장 나창헌 선생 자제인 나중화 광복회 부회장,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 선생의 증손 이항증 씨도 이 자리에 함께 했다. 

일행은 이날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영안백화점 옥상도 찾았다. 영안백화점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1921년 신년회 행사를 개최한 역사적 장소다.

평화당은 영안백화점에서 61차 최고위원회 회의를 열고 장정숙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일제 잔재문화 청산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대한민국 정당이 이 곳에서 공식 행사를 개최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상해=조재완 기자] 민주평화당 지도부와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20일 중국 상해 영안백화점 옥상에서 현장 최고위원회 회의를 개최했다. 영안백화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1921년 신년회 행사를 개최한 역사적 명소다. 2019.02.21. chojw@newspim.com

 chojw@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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