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전에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허준>과 <<대장금>은 한의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끌어올리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천첩(賤妾)태생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조선 최고 명의에 오른 허준과 의녀(醫女)로서 임금의 주치의까지 지낸 대장금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더불어 모든 이들의 관심사인 건강문제를 한의학적 치료과정을 통해 소개하여 재미와 감동, 정보욕구의 충족이라는 문제까지 채워줌으로써 웰빙 바람과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附子)라는 약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고, 임신부에 웅담(곰쓸개)을 먹이고 십전대보탕을 쓰는 것도 보고, 눈이 침침하여 안보이던 사람이 침 몇 번으로 눈을 뜨게 되는 기적도 보면서 감탄하기도 하였다.
이런 사극(史劇)에서 무엇보다도 시청자들이 놀랐던 것은 의관(醫官)이 맥을 통해 왕비나 공주의 질병을 알아맞히는 장면이었다.
그것도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관념이 팽배하던 유교사회라서 직접 손을 잡지도 못한채 휘장 밖에서 맥이 뛰는 것을 실로 연결하여 병을 알아맞히는 장면이었다.
드라마라는 재미와 과장이 포함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장면은 일반인들로 하여금 한의학에 대한 신비심과 오해를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이 드라마를 보고 오신 할머니들 가운데는 진료실에 들어오시자마자 아무 말씀도 안하고 손만 내밀면서 ‘내병 알아맞혀 보라’는 눈짓을 하시는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다. 이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전통적인 한의학적 진단법에 근거해 보면 망(望), 문(聞), 문(問), 절(切)이라는 사진(四診)을 합쳐서 진단하는 것을 기본으로 여겨 왔다.
여기서 망(望)이란 얼굴의 형상이나 색깔을 보고 그 사람의 상태를 진단하는 것이다.
동의보감에 보면 대부분 얼굴이 희고 살이 찐 사람은 기허습담(氣虛濕痰)의 경향을 띠고 있어서 기(氣)가 부족하여 몸에 습담이 많이 끼인다고 보았으며, 얼굴이 검고 마른 사람은 혈허유화(血虛有火)의 경향을 띠고 있어서 피가 부족하고 몸에 열기가 있다고 보았다.
문(聞)이란 환자에게서 나는 여러 가지 소리를 듣는 것이다. 목소리나 가래, 숨소리의 거칠기에서부터 복부에서 나는 소리까지 듣는 가운데 몸의 질병이 있는지, 환자 몸의 허실이 어떤지를 확인한다. 현대의학의 청진음등도 이런 유형이라 하겠다.
문(問)은 환자의 상태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다. 한양방을 막론하고 오늘날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환자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주된 증상이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물어봄으로써 그분의 증상을 의학이론 속에 넣고 진단해 낸다.
절(切)은 ‘만진다’는 뜻으로 맥을 짚는 일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손의 요골동맥부위에서 나타나는 맥의 강약과 빠르기를 통해 인체 각부위 기혈(氣血)의 성쇠를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손뿐만이 아니라 목주위, 발목주위의 맥박까지 확인하는 경우도 있고, 최근에는 복진(腹診)이라 해서 배의 상태를 통해 진단하는 방법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렇게 네 가지를 모두 종합하여 환자의 신체상태와 질병유형을 판단한다. 그러므로 맥만 보고 어떤 병인지을 정확히 맞힌다든지, 임신여부나 뱃속에 있는 아이가 남아인지 여아인지를 맞힌다는 것은 넌센스에 불과하다.
일반인들이 한의학을 대하는 태도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서양의학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한의학은 모두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하는 태도이다.
다른 하나는 한의사가 맥 한번만 잡고 침 한방만 놓으면 세상 모든 난치병이 진단, 치료된다는 신비적인 접근법이다.
이 두 가지 태도는 모두 옳지 않다. 한의학은 서양의학과는 다른 전통적, 독창적인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한 합리주의적 과학인 것이다.
거듭 강조컨대 한의학은 미신도 신비도 아니다. 한의사는 맥 하나로 병을 맞히는 점쟁이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