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댐 지키려다 구례가 쑥대밭
전쟁터 방불케 하는 구례시장, 양정마을 등
[구례=뉴스핌] 조은정 기자 = "억장이 무너진다. 집이 통째로 잠기는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구례=뉴스핌] 조은정 기자 = 12일 오전 구례군 양정마을 주민들이 "억장이 무너진다. 집이 통째로 잠기는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2020.08.13 ej7648@newspim.com |
전남 구례군 구례 읍내는 지난 7일과 8일 '500㎜ 물 폭탄'과 섬진강 제방붕괴 사고로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지난 12일 오전 구례 읍내로 접어드는 길은 도로를 휩쓸고 다니는 흙탕물과 물에 잠긴 논밭, 흙탕물 뒤집어쓴 자동차, 흙더미와 뒤엉켜 도롯가에 나와 있는 가재도구 등으로 널부러져 있었다. 피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구례=뉴스핌] 조은정 기자 = 구례군 구례 읍내는 상가와 주택에 있던 가재도구는 흙더미와 뒤엉켜 도롯가에 나와 있었다. 2020.08.13 ej7648@newspim.com |
이날 오전 찾은 구례 양정마을.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냄새가 코를 찔렀다. 쓰레기와 음식물, 축산 농가에서 쓸려온 분뇨가 한데 섞여 엄청난 악취를 풍겼다. 각종 폐기물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가정집에는 아직 걷어내지 못한 진흙이 가득했다. 세탁기 등 가전제품이 흙으로 뒤덮여 있고, 과일과 채소 등 멀쩡한 게 하나 없이 누렇게 썩어가고 있었다.
축사도 온전할 리 없었다.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 온몸에 상처를 입고 쓰러진 소들과 폐사한 소들이 방치돼 썩는 듯한 악취가 진동했다.
양정마을은 축사농가 지역으로 44농가에서 사육하던 소 1527두 가운데 400두만 구조됐다. 인명피해는 없으나 농경지 400여ha와 마을 115가구 대다수가 침수됐다. 3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이날 오전까지도 270여 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구례=뉴스핌] 조은정 기자 = 전남 구례군 구례 읍내는 지난 7일과 8일 '500㎜ 물 폭탄'과 섬진강 제방붕괴 사고로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2020.08.13 ej7648@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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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이씨는 "물이 차오르면서 이웃 주민들과 함께 지붕에 올라갔다. 애지중지 키웠던 소·돼지가 물에 휩쓸려 죽었다"며 "1분만 늦었어도 우리도 다 죽었을 것이다. 막막하고 잠도 오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복구지원을 위해 현장에 31사단 장병들과 자원봉사자, 소방, 경찰 등이 더위 등에도 불구하고 복구하는 손길에 쉴 틈이 없다. 주민 대다수가 노인들이었고 워낙 큰 피해를 본 터라 인력과 장비가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구례군재난안전대책본부장은 "침수주택 정리, 부상 및 면역기능 강화, 가축 치료, 방역, 전염병 예방에 주력하며 하루빨리 피해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되찾기 바라는 마음으로 복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례=뉴스핌] 조은정 기자 = 12일 31사단 장병들이 구례군 양정마을 수해피해 복구 지원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2020.08.13 ej7648@newspim.com |
이어 찾은 곳은 구례읍 5일 시장.
이곳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상가에 토사가 들이차 마치 폐허를 방불케 했다. 상가 앞에는 망가진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복구에 나선 상인들은 물건을 물로 씻어내고 못쓰게 된 제품을 밖으로 빼내느라 바삐 움직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소방당국은 펌프를 동원해 지하나 건물 내부에 있는 물을 밖으로 빼냈고 소방차를 이용해 물로 진흙탕이 된 도로를 씻어내느라 분주했다.
상인 김씨는 "상인회에서 지난 8일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을 했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물이 허리까지 들어찼다"며 "수십 대의 냉장고와 에어컨이 물에 잠겨 다 버려야 할 것 같다"며 구석에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구례=뉴스핌] 조은정 기자 = 지난 7일부터 이틀간 쏟아진 폭우로 섬진강 지류 서시천 제방이 붕괴되면서 구례오일시장 일대가 물에 잠겼다. 2020.08.13 ej7648@newspim.com |
군은 10일 오후 11시 기준으로 잠정피해액이 1268억원이라고 밝혔다. 전날 추정치보다 700억원이 늘어난 규모다.
이처럼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가운데 침수 원인을 놓고도 논란이 되고 있다.
영산강홍수통제소에 따르면 지난 8일 섬진강댐 수위가 계획 홍수위인 197.7m에 근접해오자 오전 6시 30분부터 수문을 열고 초당 800~1000t의 방류를 시작했다. 이날 오전 집중호우가 내려 댐으로 유입되는 물이 증가하자 정오부터는 1700t을 방류했다. 이는 섬진강댐이 방류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구례 주민들은 "수해 주요 원인은 집중호우보다 섬진강댐의 불시 방류다. 하류 주민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예고 없이 최대치를 흘려보내 피해를 키웠다"며 "이건 수해가 아닌 인재"라고 주장했다.
이에 영산강홍수통제소는 "예측을 훌쩍 넘는 500㎜ 비가 내려 방류량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구례대책위는 "결국 영산강홍수통제소는 섬진강댐을 지키려다 구례가 쑥대밭이 됐다"며 "정부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섬진강댐의 존재 이유와 운영방식 등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ej7648@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