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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교육 死교육] “내 레벨테스트 성적에 풀죽은 우리 엄마, 사교육을 믿게 됐다”

“우리 학원 다니는 초등학생은 대입문제 풀어요”
고난도문제로 수준 과시하며 부모심리 폭풍자극
학원생 모으기 도구로 전락한 레벨 테스트의 덫
“학부모 스스로 학원에 권위와 후광을 입히는 셈”

  • 기사입력 : 2017년09월05일 15:09
  • 최종수정 : 2017년09월05일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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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이 대입의 성패를 좌우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공교육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교육이 공교육을 무너뜨렸다고 할 수 없다.

철마다, 아니 철에 앞서 옷을 갈아입는 사교육 시장. 사교육 종사자들은 공교육의 보완재가 사교육이라고 외친다. 인적자원이 전부인 한국에서 사교육은 당당한 산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학부모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마케팅, 현금이 오가는 은밀한 과외는 이런 외침을 무색하게 만든다. 뉴스핌은 사교육 시장을 바로 알고, 공교육과 사교육의 공존을 위해 ‘私교육 死교육’ 시리즈를 시작한다.

[뉴스핌=김기락 기자] “애 교육을 시키겠다는거야 말겠다는거야? 학원이 학교야? 왜 학원비 3개월치를 미리 내는거야?”

경기도 하남에 사는 주부 최모 씨는 최근 자녀 교육 문제로 남편과 다퉜다. 유명 영어학원 등록이 갈등의 불씨였다.

최 씨는 “애 영어학원비를 3개월 단위로 100여만원씩 낸다고 하니까, 학교 등록금도 아니고 무슨 학원에서 분기마다 학원비를 받냐며 남편이 화를 냈다”고 말했다.

등록에 앞서 최 씨의 두 자녀는 레벨테스트를 받았다. 학원에 붙어있는 유명 대학 합격자 명단, 수십대에 달하는 학원 버스, 상위권 학생들만 가르친다는 상담 선생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영어학원이 시행 중인 레벨테스트가 마케팅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생 수준을 알기 위한 단계로 알려지고 있으나, 실상은 학원생을 끌어 모으기 위한 마케팅 도구라고 학부모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 견해도 다르지 않다.

최 씨는 “주변에서 레벨테스트 잘 봤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엄마들이 학원 등록상담을 하고 나면 레벨테스트와 학원 운영 방식 등에 대해 의아해 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둔 박모 씨도 큰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꼽히는 그의 딸이 유명 영어학원 레벨테스트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자녀 교육이 수포로 돌아간 듯 했다.

박 씨는 “아이가 중학생 수준의 영어도 곧잘 해요. 수준을 좀더 끌어올리기 위해 유명 영어학원에서 레벨테스트를 받았어요”며 “근데 성적이 형편없다는 거에요. 순간 상담 선생님의 말에 더 믿음이 가게 됐어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원에 보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나름 영어를 잘 하는 우리 애의 실력이 아주 낮게 나왔기 때문에 이 학원에서 배우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레벨테스트 후 눈물을 뚝뚝 흘리는 딸을 달랜 뒤 박 씨는 후회했다. 딸의 얘기를 들어보니, 지금까지 풀어본 적이 없는 문제들만 나왔고 사촌 언니의 대입 영어 문제집에서 비슷한 유형을 찾았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일을 겪은 박 씨는 고등학생 문제를 초등학생에게 낸다는 생각에 그 학원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 의기소침해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한동안 지우지 못했다.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부모가 자녀들의 가방을 들고 있다. 이형석 기자 leehs@

뿐만 아니다. 레벨테스트 통과를 위한 사교육도 성행 중이다. 유명 학원에 들어가기만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란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레벨테스트에 대해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최환석 가정의학과 교수는 ‘나는 한국경제보다 교육이 더 불안하다’는 저서를 통해 이를 ‘후광효과(Halo Effect)’로 분석했다.

그는 “유명하다는 학원에 가보면 상담해주는 ‘전문가’라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이미 이 학원에 들어가면서 후광효과를 경험할 것”이라며 “후광효과를 지속시키기 위한 또 한가지 방법이 레벨테스트”라고 지목했다.

이어 “학원들이 수강생들의 반을 배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된 레벨테스트가 학생들의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변질됐고, 그 시험은 학원에서 임의로 만드는 것이어서 잣대의 기능을 할 수 없다”면서 “우리 스스로 (학원에) 대단한 권위를 부여하고 그 후광을 입히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직 학원 관계자는 “상담실장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일부 학교 및 학부모들과 결탁해 학원생을 모으거나 본인이 다른 학원으로 옮긴 뒤, 학원생을 (옮긴 학원으로) 유도하는 일이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김기락 기자 (peoplekim@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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