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원전 가동 1위 스페인, 정치권 이해관계에 막혀 진척 못해
[뉴스핌=이진성 기자] "원자력 발전소 및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 시설 등을 놓고 정치권에서 간섭하는 행위는 절대 안된다."
유렵의 주요 원자력 및 에너지 현황을 취재하는 가운데 가장 많이 들었던 답변이다. 원자력 발전소 및 폐기물 시설 등 부지를 선정할 때 이해관계자로 엮인 정치권 및 경제계 등이 끼어들면, 사태가 악화된다는 것이다.
실제 핀란드와 스위스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은 원자력 관련 시설을 놓고 전문기관이 안전성 및 기술적 검토, 국민 여론 등을 거쳐 후보지를 추천하는 구조다. 정부는 정치권 등 이해관계 없이 기관 연구에 의지해 최종 승인해주는 역할만 담당한다.
핀란드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원전 시설 및 고준위방폐물 처리시설 운영계획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인구가 500만명에 불과하지만, 가동원전이 4기나 되고, 앞으로 3기가 추가로 운영된다. 게다가 최근에는 세계 최초로 고준위방폐물 처리시설 계획을 승인받고 추진하는 중이다.
스위스 그림젤 고준위폐기물 연구시설(GTS).<뉴스핌=이진성 기자> |
스위스는 5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지만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폐쇄를 결정했다. 2019년부터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같은 상황에서도 방폐물 처리를 위한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원전 시설 관련해 관리기관이 시설 후보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정치권 및 경제계의 간섭이 차단된다는 것이다. 관리기관은 지역 여론과 지질환경, 문화재 및 지진 발생 여부 등을 검토해 최종 후보지를 올리면 정부는 승인을 내리는 구조다.
방문 국가 가운데 유럽에서 원전 가동량이 가장 높다는 스페인은 우리와 사정이 비슷했다. 총 7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스페인은 고준위방폐물 처리시설을 갖추는 방안을 마련하고 국민 동의까지 받았으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등의 마찰과 정치권의 개입으로 부지선정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의 원전 관련을 총괄하는 단체인 엔레사(ensesa)의 마리아노 몰리나 국제홍보담당관은 "부지 선정 등 이해관계에 묶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만약 재판 결과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올 경우 모든 계획이 무효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핀란드와 스위스 같은 유럽 주요국들이 정치권 개입을 원천 차단하는 이유다.
핀란드의 고준위방폐물 책임기관인 포시바 솔루션(POSIVA solusions)의 낌모레흐또 세일즈매니저는 "원전 관련 시설은 지질구조와 지진 여부 등 안전성이 가장 우선 고려돼야 하고 지역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면서 "이 가운데 정치권 및 경제계가 간섭하게 되면, 최우선 지역이 밀려나는 등 안전성이 위협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스위스 방폐물 책임기관인 나그라(Nagra)의 인고 블레히슈미트 박사도 같은 의견을 냈다. 블레히슈미트 박사는 "우리는 지자체가 원한다고 해서 후보지로 올리지 않는다"면서 "먼저 기관이 안전성과 관련한 검토를 통해 후보지를 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경제효과를 노린 정치 및 경제계의 개입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스핌 Newspim] 이진성 기자 (jin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