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 만드려면 한 달, 주화는 30분.."화폐 생산량 전년보다 10% 늘어"
보안을 어기면 군 형법이 적용된다는 서약서를 보니 비로소 조폐공사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27일 동대구역에서 버스로 40여분 걸려 도착한 경상북도 경산,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 입구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조폐공사 경산본부는 지폐를 제조하는 인쇄동과 동전을 만드는 주화동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생산된 지폐와 동전은 한국은행으로 이송된다. 한은이 시중은행 등을 통해 공급하면서 지폐와 동전은 '화폐' 구실을 하게 된다.
화폐를 생산하는 곳인만큼 조폐공사는 국내 공공기관중 보안 등급이 가장 높다. 허가받은 소수만 들어갈 수 있다. 그 분위기에 저절로 숨을 죽였다. 10여분간의 보안절차를 거친 후 지폐를 만드는 인쇄동에 들어섰다.
경상북도 경산의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 전경 <자료제공=한국조폐공사> |
◆지폐 만드는데 한 달, 연간 최대 18억장 생산 가능
"제품은 내 몸 같이! 품질은 생명처럼!"
여느 제조공장처럼 생산성을 강조하는 표어가 걸린 인쇄동 복도는 돈 냄새가 진동을 했다. 실내 공장을 향해 3분여를 걸었을까. 어느새 통제구역 팻말이 걸린 철문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여니 정적이 흘렀던 건물 분위기와는 '딴 판'이다. 환한 조명 아래 쉬지 않고 움직이는 기계로 시끌벅적했다. 기계에서 튀어나오는 수천장의 5만원권 전지를 보니 '저게 돈이 맞나' 싶었다. 곳곳에 쌓인 돈뭉치가 발에 치였다. 위를 쳐다보니 여느 공장처럼 휑하다. 나중에 들어보니 CCTV만 450여개가 숨어있었다. 인쇄동 직원들은 소음막이 주황색 귀마개를 꽂은 채 무표정하게 돈만 바라봤다.
인쇄동의 크기는 축구장 2배 면적인 7000~8000평에 달한다. 두 개 라인으로 이뤄진 공장이 하루 24시간 가동될 경우 은행권을 연간 최대 18억장을 생산할 수 있다. 현재는 평균 7~8억장을 생산한다. 지폐 종류마다 정해진 기계는 없다. 생산할 때마다 잉크 등을 교체하는 식이다.
지폐 인쇄의 첫 단계인 평판인쇄 과정 <자료제공=한국조폐공사> |
지폐는 충남 부여제지본부에서 생산되는 보안 용지로 만들어진다. 용지를 빛에 비춰보니 신사임당 홀로그램이 눈에 띈다. 7~8개의 모든 공정마다 보안 기술이 추가되는 식이다. 잉크도 인쇄동 옆 공장에서 직접 만들고 있었다.
우선 꽃무늬 등 바탕그림을 그리는 평판인쇄부터 시작한다. 이후 잉크 자연 건조에만 5~7일이 걸린다. 이후 스크린인쇄 공정에서 금액을 인쇄한다. 여기에서 인쇄된 숫자는 각도에 따라 숫자가 변한다. 보라색의 5만원권 숫자는 살짝 기울이니 초록빛이 돌았다. 이 과정에서 건조 역시 3일 정도가 소요된다. 살짝 만져보니 잉크가 손에 묻어났다.
세번째로 홀로그램이 부착된다. 홀로그램은 공사에서 디자인만 구성해 일본에 제작 의뢰를 한다. 관계자는 홀로그램 역시 국산화가 필요하지만, 워낙 소규모라 생산을 의뢰할 국내 업체를 구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요판인쇄에 들어간다. 지폐 표면을 만져보면 울퉁불퉁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공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가 사용하는 지폐를 완성하는데만 한 달여가 소요된다.
만드는 과정에서 불량은 없을까? 공사 추정 불량률은 전체 5% 미만이다. 5만원권 불량률이 조금 높다. 불량으로 분류된 미완성 지폐는 전부 폐기되지 않고 일부 재가공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하루 최대 전지 기준 20만장을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지 1장에는 5만원권 기준으로 총 28장(140만원)이 인쇄돼 있다. 1000원권 등 나머지는 전지 1장당 45장이 있다.
인쇄동을 나오면서 구석에 쌓여있는 5만원권 전지가 몇장인지 궁금했다. 물어보니 5000장이라고 한다. 무려 70억원어치다. 그 주위에만 비슷한 뭉치가 3~4개 포장되고 있었다.
최종 기계작업 중인 5만원권 <자료제공=한국조폐공사> |
◆동전은 30분만에 '뚝딱'
"세계 최고 주화는 우리가 만든다"
인쇄동에서 나와 5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1000평 크기의 주화동은 2009년 자동화됐다. 일부 점검 과정 빼곤 사람의 손을 별로 거치지 않았다. 바닥 아래로 롤에 포장된 동전뭉치가 이동하고 있었다. 공정 과정도 잉크 건조 등의 과정이 필요없어 간단하다. 압인, 검사와 포장 총 세 공정 과정을 거치는데 30분 정도가 소요되며 1분당 동전 750~850장을 만든다.
주화는 연간 최대 10억장 정도를 만들 때도 있었지만 현재는 6억장 정도를 생산한다. 그나마 500원권이 올해 담뱃값 영향으로 연간계획에 2000만장을 더해 생산하기도 했다.
100원의 경우 1롤에 50장, 한 박스에 40롤로 포장돼 한국은행까지 이송된다. 불량은 무게로 감별하는 식이다. 100원 롤 하나당 272g인데 1.3g 전후의 오차가 생기면 자동으로 분리 검열된다.
주화는 흔히 사용하는 것 외에 기념주화, 해외에서 위탁받은 주화 등도 생산한다. 12월에는 I국의 주화도 생산할 것이라고 한다.
주화가 롤포장 작업을 마치고 박스 포장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자료제공=한국조폐공사> |
◆100-1=0, "1번의 실수로 국민의 신뢰를 잃을 수 있어"
조폐공사는 1975년 조폐창으로 출범한 이후 수익원 부재로 매해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5만원권 이후 발행량 감소로 실적 또한 악화됐다. 지난 2009년 6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2012년부터 적자 전환했다.
김화동 조폐공사 사장은 핀테크 등 새로운 시대 흐름에서 다양한 활로를 찾고 있다며 취재진들에게 홀로그램이 새겨져 있는 명함 뒷면을 꺼내 들었다. 김 사장은 "화폐 생산량이 작년에 비해 10% 이상 증가했고 우리 공사가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며 "많은 기업에서 공사의 위변조 방지기술을 사용하게 됐다. 4가지 정도의 위변조 기술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부터 골드바를 판매하고 있다"며 "조폐공사 골드바는 국내에서 가장 믿을 만한 신뢰할만한 제품이 됐다. 그 노력 덕분에 인도네시아 등지의 홈쇼핑 TV등에서 론칭됐다"고 강조했다.
인쇄동을 나와 지폐동으로 가는 길, 5만원권 지폐가 각인된 돌탑 아래 '100-1=0'이란 문구가 눈에 띄었다. 김기동 화폐본부장은 "100을 잘해도 1을 실수하면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현금도, 신용카드도 점점 사라지는 요즘. 한국조폐공사는 그렇게 그들만의 생존법을 찾고 있었다.
지폐를 검수하는 직원 <자료제공=한국조폐공사> |
[뉴스핌 Newspim] 정연주 기자 (jyj8@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