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유럽중앙은행(ECB)의 장기저리대출(LTRO)이 신용경색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국채시장을 왜곡해 잠재적인 리스크를 오히려 확대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이는 내주 ECB의 2차 유동성 공급을 앞둔 가운데 제기된 것으로, 주변국을 중심으로 한 국채 시장 안도 랠리가 향후 지독한 후유증으로 반전된다는 내용이 골자다.
금융업계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문제는 대출 과정에 요구되는 담보 요건이다. ECB의 대출을 받는 은행은 담보물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 최고 65%까지 헤어컷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중앙은행 대차대조표는 불어나게 된다.
또 상환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ECB가 자산에 대해 우선권을 갖게 되며, 다른 채권자들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대출이 장기화, 대형화될수록 잠재 리스크도 커진다는 지적이다.
RBS의 알베르토 갈로 유럽 신용 분석가는 “ECB 대출은 독이 든 사과와 같은 격”이라며 “당장 디폴트 리스크를 떨어뜨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상환 가능성도 함께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의 유동성 지원이 내일의 종속관계로 전락하는 구조”라며 “BBVA와 BNP, 인테사, 산탄데르 등 대부분의 유로존 대형 은행이 이 같은 매커니즘에 취약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해 12월 4980억유로의 장기 대출 이후 주변국 신용 경색이 크게 완화됐다고 평가했다. 일부 시장 전문가는 ECB의 과감한 정책이 ‘게임 체인저’라는 호평을 내놓았지만 대부분 근본적인 부채위기 해결책이 아니라는 데 입을 모았다.
시장 관계자는 또 LTRO가 유로존 대형 은행의 자본구조를 정크 상태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출을 받은 은행이 대부분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집중됐고, 이들은 자금을 자국 국채를 매입하는 데 투입하고 있다. 국채 매입 규모가 자본으로 충당할 수 있는 적정 규모를 넘어섰고, 국가 부채 위기를 기초자산으로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격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ECB가 그리스 국채 매입에 따른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채권자들을 후순위로 내몰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모간 스탠리의 이안 스태너드 이코노미스트는 “ECB는 그리스 뿐 아니라 다른 주변국 국채에 대해서도 같은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이 때문에 글로벌 민간 투자자들은 주변국 국채 매입을 더욱 꺼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CB가 보유한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국채 규모는 2200억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모간 스탠리의 휴 반 스티니스 전략가는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 유로존 은행권이 자본요건 충족을 위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중단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향후 18개월간 2조5000억유로, 5년간 4조5000억달러의 디레버리징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헨더슨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시몬 워드는 “ECB가 이른바 ‘백도어’ 양적완화(QE)를 실시한 셈이지만 효율성은 더 떨어진다”며 “채권자들의 권리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주변국에 대한 ECB의 신용리스크를 확대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